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 (문단 편집) == 사건 내용 ==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431-50번지에서 윤금이 씨(당시 나이 26세)[*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으로, 17세 때부터 생계를 위해 공장을 전전하다가 평택 등지의 유흥업소를 거치면서 주로 주한미군들을 상대하는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사건이 일어나기 며칠 전 동두천으로 이사해 거리에서 꽃을 팔기도 했다.]의 참혹한 시신이 집주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당시 윤금이 씨의 항문에는 우산대가 꽂혀 있었는데 직장까지 약 26센티나 들어가 있었으며 음부에는 [[코카콜라]] 병이 꽂혀 있었고 입에는 성냥개비가 물려 있었으며 온 몸에는 분말세제가 흩뿌려져 있었다. 직접사인은 코카콜라 병으로 인한 얼굴 전면부의 외상 및 출혈로, 마클이 휘두른 콜라병에 맞아서 얼굴이 깨져 죽은 것이다. 가해자는 [[제2보병사단(미국)|미 육군 제2보병사단]] 제20보병연대 5대대 본부중대 의무대 소속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 [[https://maryland.arrests.org/Arrests/Kenneth_Markle_24819783/|1972년 6월 7일생]]이며 [[웨스트버지니아]] 주 카이저 시 출신. 미국에서도 짜잘한 범죄를 계속 저지르다가 2023년에 사망했다.]의무 이병으로, 사건 이후 [[미합중국 육군범죄수사국|미 육군 범죄수사사령부(현 미합중국 육군범죄수사국)]]와 [[경기도북부경찰청]] [[의정부경찰서]][* 당시 경기도지방경찰청.]가 수사에 나섰다. 이에 목격자들의 진술 및 제보로 신원이 밝혀져 잡혀갔고 얼마 안 가 미 육군 [[미합중국 육군/군사경찰|군사경찰대]]로 신병이 인도됐다. 엽기적인 범행도 세간에 충격을 줬지만 사건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한미관계]]의 불평등에 분노한 전국 5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주한미군의 윤금이씨 살해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윤금이공대위)'[* 1993년에 [[http://usacrime.or.kr/doku/doku.php|'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로 출범했다.]를 수립하여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의 '미군 승차 거부 운동', 상인들의 '미군 손님 안 받기 운동' 등이 이어졌고 공대위도 <피의자 케네스 마클 구속 및 엄중한 처벌과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란 성명서를 2사단에 제출했으며 시위는 동두천을 넘어 전국에까지 파급됐고 더 나아가 SOFA 개정 요구도 힘을 얻었다. 다만 [[공무원]]이나 일부 우익 성향의 [[시민]], [[경찰]] 등은 "[[양공주]] 하나 죽었다고 세상이 이리 시끄럽냐, 하찮은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한미관계에 금 가게 할 순 없다."는 식으로 시위를 비난하면서 피해자를 모욕했다. 게다가 윤금이씨의 시체 사진이 대학가 등 집회장에 공개되면서 [[반미]] 감정이 더욱 강해졌다. 엽기적인 살인 현장의 모습에 나라 전체가 뒤숭숭해진 것은 물론이다. 다만 윤금이공대위 내부에서도 시신 공개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가해자인 마클 이병은 재판 내내 관련 혐의를 부인한 채 시신 훼손은 자신을 질투한 제이슨 램버트 육군 [[상등병]]이 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마클의 아버지도 아들이 한국 교도소로 이감되지 않길 바라며 1994년 미국 연방대법원에 탄원서를 냈으나 윌리엄 렌퀴스트 연방대법원장은 이를 기각했다. 결국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가 1993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전 윤금이의 유가족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민사상 배상금 7,100만 원을 받았는데 이것이 2심 선고에 영향을 끼쳤다. 1994년 대법원도 2심과 동일한 판결을 내리면서 천안소년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1995년 [[어린이날]]에는 [[교도소]] 복역 중에도 수감 동료인 미 육군 병사와 [[http://usacrime.or.kr/doku/doku.php?id=미군범죄:한창열씨택시강도사건|난동을 부리는 등]] 그닥 모범적으로 수감 생활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감 중에 교도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일삼아 [[벌금]] 200만원이 선고되었으나 이를 납부하지 않아 노역 100일이 추가되기도 했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0217582|#]] 2006년 8월 [[가석방]]되었는데 즉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사실은 두 달 뒤에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자료 요청을 해서 알려졌는데 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 범죄자는 석방 뒤 한국 감독권에서 자동적으로 벗어나 미국 정부의 관리를 받지만 미국 측이 공식적으로 그들의 소재지 및 생활태도 등 기초적 정보를 공지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현지에선 사면된다. 이와 별개로 마클 이등병은 형 확정 즉시 미 육군에서 [[불명예 전역#s-2.3]] 처리되어 제적되었다. 만약 이런 사건이 21세기에 일어났다면 [[나라 망신]]급 중 범죄이며 즉시 미국으로 송환해 재판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케네스의 죄목은 1급 강간 살인 혐의로 사형 또는 가석방 불허 종신형이 선고되며 무기징역으로 내려갈 경우 바로 [[ADX 플로렌스 교도소|깨끗한 지옥인 교도소]]에서 죽을 때까지 정신적 고문을 당하게 되며[* 케네스 정도의 범죄면 고등 보안 등급인 USP 플로렌스에 수감된다. 참고로 러시아도 자국민이 외국에서 나라 망신급 살인 범죄를 저지르면 본국에서 바로 가석방 불허 종신형이 선고되고 [[흑돌고래 교도소]]로 보낸다. 해당 문서 참조.] 미군 측에서 피해 유가족들에게 사과 및 피해 보상도 해 줘야 한다. 정치인 [[이정희]]가 한미관계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이 사건이었으며 여성학자 정희진에 의하면 원래 두레방 등 여성운동 그룹이 해당 투쟁의 주체였으나 [[기지촌 여성]]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성노동자 여성들의 부정적인 사회적 낙인 때문에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자 당시 강력한 세력을 자랑하고 있던 [[NL(정파)|NL]] [[운동권]]의 힘을 빌려야 했으며 이에 따라 투쟁의 초점이 여성인권에서 멀어지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20975|한계점]]도 있었다. 이 사건의 실질적인 해결과 후속조치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처음부터 참여했던 '두레방'으로 대표되는 [[개신교]] 운동 세력이었는데 이들은 미국이 윤금이 유가족들에게 배상금을 내게 하도록 협상력을 발휘했고 [[국민일보]]도 여느 신문보다 시리즈 등을 중심으로 해당 사건을 [[http://www.kmib.co.kr/search/searchResult.asp?searchWord=%uC724%uAE08%uC774&pageNo=8&period=|심층적으로 다뤘다.]] 사건 이후에도 한미 양국이 SOFA 개정에 손을 대지 않아 미군 범죄는 연속으로 발생했고 2000년 이태원 접대부 살인사건을 계기로 SOFA 개정 운동이 전개되어 2001년부터 미군 범죄자를 기소 시점부터 한국 정부가 인도하는 쪽으로 SOFA 규정이 개정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